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시대 (문단 편집) ===== 이집트 보호국화(1882 ~ 1922, 1956[* [[제2차 중동전쟁]] 이후]) ===== 1870년대, [[이집트]]는 많은 이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주식을 영국이 구입하면서부터 간섭이 심해졌다. [[1879년]], 이집트에선 [[아라비 파샤]]를 중심으로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Urabi revolt) 그러자 1882년, 영국은 이에 개입해 군대를 파병하였고, 반란군은 [[영국군]]에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그 이후 이집트에는 영국군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약 74년간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의 비공식적인 보호령이 된다.] 이집트의 [[민족주의자]]들은 반영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진압당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 이집트에서는 [[후세인 카멜(이집트)|후세인 카멜]][* 참고로 이 사람은 [[이라크]]의 [[후세인 카멜]]이 아니다.]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19세기 중반 쯤부터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상황이였으나, 공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였다.] 이집트 술탄국이 설립된다. 그러나 [[영국]]은 이집트를 [[식민지]]로 병합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자 이를 알게알게된 이집트인들은 영국의 적국인 [[독일 제국]]의 도움을 받아 이집트를 독립시키기 위해 친독 성향을 가지기도 했다. 할수 없이 이집트를 자국 편에 끌어들이는 것을 원한 영국은 공식적인 보호령으로 삼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이집트인들을 전쟁터로 동원하고, 전쟁 물자도 수탈해간 영국에 대해 분노한 이집트인들은 전후인 1919년, 대규모 반영 운동을 일으키는데, 이게 바로 [[1919년 이집트 혁명]]이다. 결국 영국은 1922년 이집트를 [[이집트 왕국]]이라는 왕국으로 독립시킨다. 그러나 영국군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고, [[수에즈 운하]]도 여전히 영국 소유였다. 경제적으로도 [[영국]]에 의존하는 성향이 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이탈리아령 리비아]]를 통하여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영국군이 [[이탈리아군]]으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자국의 군대를 [[수에즈 운하]]를 제외한 이집트의 영토에서 철수시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